잡담/생각들

성경은 신화인가?

에멀전 2023. 6. 15. 00:21

불트만이 잘 이야기한 것처럼, 신화란 이 세상에 실존하지 않는 초월적인 것들을 이 세상의 것들로 표현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적이라고 하는 것들이 정말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의 것으로 표현하는데 신화적 언어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보통 보수주의자들이 신화라는 단어에 염증을 느끼는 이유는 신화라는 단어를 “실존하지 않는 허상의 것”으로 이해할 때 일어난다. 이를 무지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는 ‘신화’라는 단어를 소비하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의 컨센서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의 보수주의 신학은 신화라는 단어를 극도로 경계한 나머지 신학의 논의 밖으로 밀어내버렸다. 

그러나 불트만이 말한 신화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은 그것이 오히려 신화의 본래적 의미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중요한건 신화라는 단어를 우리의 논의 밖으로 던져버리는게 아니라, 사실은 모두가 신화의 세계에 실존하고 있음을 보이는게 더 중요하다. 

비신자들이 그들 스스로가 무신론자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결국 어떤 신화를 ‘믿느냐’의 문제이지 신화를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그리스로마신화 주몽설화와 같은 것들을 거짓된 것으로 치부하며 스스로가 문명인인 양 굴지만, 실제로는 고대보다 훨씬 더 방대한 신화에 압도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상의 모든 미디어 산업들은 존재할 수가 없다. 영화와 유투브야 말로 오늘날의 신전이며, 콘서트는 오늘날의 제사다. 그렇게 고대인과 자신들의 접점을 발견할 때에야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신화 속에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한편, 신화나 이야기의 쓸모는 오직 그것들을 삶의 실존으로 믿을 때 일어난다. 제우스의 존재는 제우스의 실존을 믿을 때에나 믿는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제우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 존재에게 신화가 주는 유익이나 해로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귀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귀신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에겐 실존적인(정신적, 육체적인 변화를 포함한) 변화가 반드시 일어난다. 광고나 영화와 같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환상을 믿는 사람에게는 존재에 실존적 영향을 미치지만, 이것의 실존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광고나 영화는 소음과 빛공해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와 신화를 나누는 일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예수가 실존적인 역사로 존재했느냐 신화인가에 대한 논쟁은 큰 의미가 없는 이야기가 된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 이야기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며, 역사적으로 실존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에게도 예수 이야기는 더 이상 신화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역사성을 발견하는 일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역사성을 믿는 일이 더 중요하다. 반대로 역사성을 부정하며 신화적 가치만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차피 역사성을 믿지 못한다면 신화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신화는 신화의 언어로 표현되고 믿어질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결국 부활은 몸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저런 쓸데없이 복잡한 사유보다(사실은 충분히 복잡하지 않은 사유) 무턱대고 믿는 무식하고 단순한 신앙이 승리하는 낫다. 알고 믿든 알지 못하고 믿든 우리는 같은 천국에 자리한다. 성경의 이야기가 놀라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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