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생각들

워라밸이라는 악령

에멀전 2023. 3. 9. 01:41

영이라는 단어를 신비주의적으로 이해하여 우리의 논의 밖으로 밀어내거나, 가볍게 생각하여 세속화하는 일 모두 지양할 일이다. 생각보다 영은 우리의 삶에 편만한 동시에 다소 깊은 차원에서 작용한다.

현 사회에 수많은 악령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워라밸”이라는 개념이 그 대표적인 악령 중 하나다. 일과 삶의 밸런스라는 단어는 일을 우리의 삶 밖으로 밀어내고, “일”이라는 개념을 악마화한다. 이원론적인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과 삶이 분리되는 순간 삶은 불행해진다. “나”라는 존재는 두 개(혹은 그 이상의) 역할놀이를 해야하며, 이러한 정신분열적인 자아분리는 “하나의 영”을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에 위배된다. 여기에서는 이런 가면, 저기에서는 저런 가면을 쓰는 일은 언제나 불행하고 피로하다. 영이 분열되기 시작하는 일, 악령이 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목회자를 할 때에도 그렇지만, 커뮤니온을 만들 때도, 커뮤니온에서 일할 때도 나는 24시간 내내 목수였고, 24시간 내내 바리스타였다. 8시간 동안 일을 한 뒤에도 계속해서 다음엔 어떤 음료를 준비할까, 어떻게 커피를 내려야 더 맛있을까를 고민했고, 집에 와서 쉬는 일 또한 더 좋은 카페를 위한 일이었다.

일은 내가 누구인지를 정의하고, 일은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동료로 우리를 이 세상에 부르고 계신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우리는 노동해왔고,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이 노동에 담는다.

그러나 이 일에 영혼을 갈아넣는 일은 그 영혼이 하나님의 영혼일 때에만 유효하다. 영혼의 원어는 “루아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불어넣으신 숨결이다. 내가 내 일에 불어넣는 숨결이,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숨결과 동일한 결이어야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일은 에덴 동산을 만드는 일이어야한다. 이제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자. 이전에 “바리스타 일”이라고 이름붙인 영혼은 조금 더 큰 괄호 안에 자리하게 된다. 우리의 24시간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내는 일이어야한다는 것.

따라서 나의 24시간을 하나의 영으로 살아낸다는건 단순히 나의 카페만을 위한 시간은 아니다. 보여주시는 이웃을 돕고, 가정을 살피는 일. 그러나 나는 이 카페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고 믿고, 나의 가족들 또한 나와 같은 것을 믿고 또 소망했다. 그러니 이 동일하게 나의 운동에 쏟는 시간, 나의 일에 쏟는 시간, 자기계발에 쏟는 시간이 나뉘어 있다고해도,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람과 하나의 영을 추구하는 사람의 삶의 색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통합되지 않은 분열된 자아 속에서 고뇌하지만, 후자는 매일이 충만하고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선물이다. 내가 “삶”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고통스러운 “일”의 순간을 견뎌내는 것과 일이든 쉼이든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를 빌드업해가는 과정이라고 믿는 삶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워라밸”이라는 악령이 왜 우리 가운데 깃들었는지 봐야한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의 영을 떠날 때 악령은 임한다. 첫째로, 우리 사회의 일이 하나님의 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일의 본질적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아닌, 돈과 먹고 사는 일 궁극적으로 우리의 욕망을 숭배하는 일이 되는 순간 우리의 일자리에는 악령이 임한다. 둘째로, 그렇게 악령이 든 일자리에서는 사람을 도구로 여기게 된다.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루아흐가 깃든 신적인 요소를 우리는 곧잘 악한 욕망, 이 세상의 썩어질 정욕들과 교환해버린다.

모든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악령이 들어오고 삶의 너무나 중요한 일부분을 잃어버린다. 어떻게하면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을지를 묻는다. 노동을 죄악시하고, 일전의 고대종교들이 그렇듯 노동을 위해 나보다 천한 인간들을 빚어내려한다. 그리고 스스로는 일을 하지 않는 신의 자리에 오르려한다.

그러나 기억해보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과연 그런 하나님인지.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친히 내려오셔서 악령들을 쫓아내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는 일을 하셨다.

'잡담 >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은 신화인가?  (1) 2023.06.15
사탄교는 리터럴리 사탄을 숭배하는가?  (1) 2023.04.28
결핍에 대한 짧은 생각  (0) 2022.02.15
노을에 대하여  (0) 2021.10.28
하나님의 집을 인테리어하기  (0) 2021.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