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생각들

노을에 대하여

에멀전 2021. 10. 28. 20:49

노을에 대하여

이집트에는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삶의 공간, 서쪽은 죽음의 공간이 자리한다. 이유는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기 때문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서쪽에 이집트의 왕릉인 피라미드가 무리지어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일출이나 일몰이나 동일하게 해가 지평선에 자리하지만, 일출은 신년의 정동진이 그러하듯이 어떤 기대감과 에너지 희망을 느끼게 한다. 반면 일몰을 보고 있을 땐 끝모를 먹먹함이 찾아온다.

강화도의 색은 일출보다는 일몰에 가깝다. 강화도 이런 저런 지역에서 지내기를 여러 해를 반복했다.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 있는데, 일몰 직전 1시간이다. 앞으로 조금 있으면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던 저 태양이 바다 너머로 사그라들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 자신의 소멸을 예고하듯이 존재감 없던 백색광에서 갑작스레 붉은 빛으로 존재감을 내뿜기 시작한다. 붉은 빛은 언제나 경고 같아서, 그 빛무리를 응시하다보면 덜컥 불안해진다. 빛이 사라진 세상, 당연하게 생각하던 그 빛이 곧 흔적도 없이 바다 너머로 사라질테니.

존재의 끝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매일 죽노라”라고 말하던 사도 바울처럼 일몰의 존재를 지각하는 사람은 매일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오늘의 종언, 하루의 끝. 그 끝에서 빛났던 시간들을 반추해본다. 하늘은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만족스러운 삶이었는지. 어떤 사람은 충만함으로 가득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잠을 청하고, 어떤 사람은 회한에 가득차 울분 속에 눈감지 못한다.

매일 겪는 죽음 앞에서 존재는 더 뚜렷해진다. 삶과 죽음은 빛과 어둠처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삶의 그림자인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의 의미는 뚜렷해진다. 흡족한 하루를 보냈거나, 부족한 하루를 보냈거나 저무는 태양 앞에서 존재의 소멸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은 강화도의 노을 앞에서의 먹먹함을 공감할테다. 무색의 하늘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고 이내 시뻘겋게 끓으며 강렬하게 불탄다. 스스로를 다 태워버린 태양은 신묘한 보랏빛을 내면서 바다 너머로 흩어진다.

재미있는건 이 소망의 끝에서, 사그라드는 마침내 맞이할 어둠 앞에서 우리는 죽음을 경험한 뒤에 곧이어 더 큰 소망을 발견한다. 저며오는 마음을 부여잡고 먹먹히 찾아오는 어둠을 겸허히 받아들이다보면, 그 죽음 너머에 존재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빛은 사라졌고, 생명은 숨을 거뒀지만 어두운 밤 하늘 아래에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 죽음을 뚫고 너머의 삶에 대한 경험이다. 태양이 사라졌다고 내가 사라지는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이 다했다고 존재는 흩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경험은 존재를 더욱 더 강하게 벼려낸다. 매일의 죽음을 경험하는 일이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존재는 내일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발견하게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분명 오늘은 사라지지만 새로운 내일이 앞에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몰이 아름다운 이유는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기 때문이요, 그럼에도 저물지 않는 나의 존재는 오늘보다 더 아름다운 내일을 가꿔갈 것을 기대케 하기 때문이다. 석양을 마주하며 진한 먹먹함을 충만하게 몸에 채우고나면 내일의 소망이 밀물처럼 밀려올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을 초월한 존재를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