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우리의 성장은 우리의 구원[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후기]

에멀전 2023. 5. 13. 13:11

첫 씬은 크립을 부르며 등장하는 로켓, 영화의 주제는 명확하다.  마지막 사운드트랙 Do you Realize와의 대비를 이루는 소외된 괴짜의 회복 이야기다. 

 

사람들은 완벽한 세상을 원한다. 그러나 그 완벽한 세상에 대한 정의는 모두 다르고, 완벽한 세상이 가져올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애써 무시한다. 어떤 세상이 완벽한 세상일까? 각자의 기준이 있을테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존재들이 없는 세상이 완벽한 세상일 것이다.

 

무엇이 기준이 될까? 다양하다. 그러나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개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필터링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돈이 그에게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면, 그런 사람에겐 천국이란 돈이 부족하지 않은 세상일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탈락하는 그런 세상이 그가 꿈꾸는 천국이다. 왜 그렇게들 상급지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가? 불행하고 싶지 않아서다. 돈이 없는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생길 위협과 어려움, 불편함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다. 기생충에서 지적하듯이 더 이상 지하철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를 맡고 싶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런 가난과 결핍된 사람들이 필터링된 상급지를 그렇게 원한다. 

 

기준이 돈이 아니라도 필터링은 이뤄진다. 배운 사람 / 못 배운 사람, 건강한 사람 / 병든 사람, 심지어는 믿는 사람 / 믿지 않는 사람까지도. 우스갯소리로 민주당 지지자만 대한민국에 남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가 되겠느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진심일거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기준이 세상의 기준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기준에 맞지 않은 사람들은 좀 더 배우거나, 노력을 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 기준에 부합한 존재가 되어야한다. 

 

영화는 정확히 그런 천국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게 정말 천국인지 묻는다. 하이에볼루셔너리가 로켓과 그의 친구들을 제거하려하면서 빚어낸 새로운 세계, Counter-Earth는 그런 세계다. 과학기술로 만들어낸 세계. 인류의 지성을 집약하여 만들어낸 세계. 하이에볼루셔너리는 창조의 능력을 가진 듯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Counter-Earth는 결함이 있었고, 하이에볼루셔너리는 이 가짜 지구를 요한계시록의 종말이 떠오를 재앙으로 폭파시켜 버린다. 로켓과 친구들이 그토록 들어가길 바라던 새로운 세상이 박살이 나버린다. 

 

계시록의 짐승은, 항상 그렇게 우리를 속일 것이다. 더 좋은 세상이 있다고, 자격을 갖추면 그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짐승을 예배하라고 말하고, 짐승의 기준을 따르라고 말한다. 돈의 힘 앞에 무릎 꿇으라고 요청하고,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요청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짐승을 예배하는 동안 반대편에는 로켓과 그의 동료들이 시체로 쌓여 간다.

 

가짜 신, 가짜 창조주를 따라 새로운 세상에 들어간 존재들도 곧 종말을 맞이한다. 마치 요한계시록의 가짜 삼위일체인 짐승의 권세를 받았으나, 결국은 그 짐승에게 불살라진 바벨론처럼 세상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것도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내세우고, 이 기준을 예배하라고 선동한 악의 세력에 의해 꿈꾸던 새로운 세상은 결국 소멸하게 된다.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요한계시록 17장 16절

 

재밌게도, ‘내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영화는 진짜 ‘내세’를 그려낸다. 코마상태에 있던 로켓은 심정지를 맞게 되는데, 이때 진짜 ‘내세’가 영화에 등장한다. 하이에볼루셔너리가 그려낸 가짜 세상이 아닌 진짜 내세에는 먼저 간 친구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라일라가 로켓에게 말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There are the hands that made us, and then there are the hands that guide their hands.

  • Lylla

 

거짓선지자와 짐승, 그리고 용이라 불리는 사탄. 이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때로는 이들이 우리를 낳은 것처럼 보이지만(2편의 맨티스와 피터의 아빠가 에고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악의 세력 역시도 하나님 당신의 통치 아래에 있다. 그러니, 좌절스런 현실에서 좌절할 이유가 없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억압하는 현실에 순응할 이유가 없다. 너머에 계신 하나님이 만들어가실 세상이야 말로 진짜 천국일테니. 

 

완벽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하이에볼루셔너리의 세계는 적합하지 않은 존재들을 쳐내는 세상이다. 결국, 하이에볼루셔너리는 자신을 제외한 동료 모두를 제거한다. 반면, 로켓의 세상은 동료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세상이다. 동료를 위해 기꺼이 불 속으로 들어가는 일, 동료를 위해 기꺼이 사자굴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맨티스와 드랙스, 네뷸라가 애빌리스크 세마리에 둘러싸이지만, 애빌리스크 마저도 동료로 만들어낸다. 심각한 병크를 저지르는 맨티스와 드랙스이지만, 로켓의 동료들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로켓은 자신의 유년기를 발견한다. 수많은 아기 너구리들,  로켓은 이제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고,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다. 그리고 말한다. “I’m done running”.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로켓의 구원은 죽음과도 같은 과거를 직면하고, 자신의 존재를 직면하는데서 이뤄진다. 로켓이 구원한건 아기 너구리들이 아니다. 로켓이 구했던 건 로켓 그 자신이었다.

 

전쟁의 끝에 노웨어가 등장한다. 로켓의 일당들이 살던 곳. 행성 노웨어, 이 세상에 없는 곳을 다른 말로 하면, 유토피아가 된다. 영화가 말하는 바는, 결국 무엇이 진짜 유토피아냐는 질문이다. 끝없는 발전과 개선을 추구하는 하이에볼루셔너리의 비행선인지, 갈 곳 없던 괴짜들이 모여사는 노웨어인지. 두 세계의 충돌은 거대한 불길 속에서 진짜 천국만을 남겼다. 로켓은 로켓이 꿈꾸던대로, 또 그의 이름대로 친구들을 하늘로 이끈다. 

 

재밌게도 노웨어의 스펠링은 Knowhere이다. 지금 너가 어디있는지 알라는 말이다. 당신은 지금 유토피아에 있는가? 아니면 하이에볼루셔너리의 지옥에 있는가? 영화는 단순히 선과 악을 나누어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유토피아로 향하는 길을 제시한다. 성숙, 자라남. 그루트가 자라나 결국에는 “we are GROOT” 외치듯이, 자라난 나무는 세상의 모든 것을 품어내는 법이다. 괴짜도, 소외당한자도, 혐오스러운 자도, 능력있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모두 나무 안에 가족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천국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