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신학도의 이터널스 후기

에멀전 2021. 11. 10. 01:13

 

마블의 새로운 영화 이터널스가 개봉했습니다. 지금껏 기독교의 모티브들이나 이야기들을 상당히 차용해온 마블이었기 때문에 이번 이터널스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이터널스는 이전의 마블 캐릭터들과는 달리, 영원한 존재 신적인 존재 또 지구의 시작과 종말을 다루다보니 당연하게도 성경 이야기에 대한 차용이 많았습니다. 물론 기독교적인 내용만을 가져온건 아니고 다른 신화적 존재들이나 개념들도 섞어내고자 노력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다소 난잡한 작품이 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네요. 다양한 종교관을 한 작품으로 섞어내려하고 여기에 현재의 PC까지 넣으려니까... 과부하가 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품이 워낙 중구난방이라 리뷰 역시도 난잡해지기 쉬울 것 같아 몇가지 주제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보려합니다.

 

1. 집에갈시간
이터널스는 계속해서 집에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이들이 '진정한 집'을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죠. 성경은 계속해서 이 땅은 우리의 집이 아니요, 하늘에 진정한 집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터널스는 이러한 이터널들의 진정한 집을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기억저장장치로 묘사합니다. 이들의 영원한 집은 없으며 각지에서 미션을 실시한 뒤에는 기억이 모두 제거되어 다시 다음 임무에 투입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러한 장치는 이터널들의 기대를 바꾸어놓습니다.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기를 멈추고 지구에서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식으로 말이죠. 줄곧 기독교의 내세에 대한 장치, 다음 세상에 대한 기대는 이 세상에 대한 소망을 멈추게 하면서 세상에서 욕심을 버리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볍게 하여 기독교인들의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무게를 덜어내버렸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종교생활에만 몰두하고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는 신앙인들의 모습은 계속해서 비판을 받아왔죠. 이터널스는 '이터널들은 속았으며, 돌아갈 집은 없다'라는 점을 내세워 존재는 발딛고 있는 세상에 충실해야함을 묘사했습니다. 

2. 이카리스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인물인 이카루스를 모티브로 하는 듯이 보입니다. 때문에 이카리스는 이터널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힘 또한 가장 강력하죠. 그러나 한편, 이 이카리스라는 이름은 가룟 유다를 떠오르게 하기도합니다. 가룟 유다의 이름 Judas Iscariot와 이카루스의 중의적 표현인 셈이죠. 리더인 에이잭을 배신하고 데비언트들에게 넘겨주는 일이나, 이카루스처럼 태양을 향해 날아가며 소멸되는 모습이 태양에 도전하기보다는 마치 그의 자살을 말하는 듯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카리스는 맹목적인 신앙을 가진 신앙인의 모습을 보입니다. 셀레스티얼 아리셈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심을 가진 그는 마치 세상의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최고의 존재만을 숭상하는 신앙인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3. 기억
기억은 이터널스에서 존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기억이 있고 없고에 따라 우리가 우리다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티나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기억을 잃어버리면 유익할 수야 있겠지만 티나가 티나다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멀전스' 임무를 마친 후 자신들의 기억이 지워지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죠. 이는 마치, 우리가 탄생 이전의 기억이 없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이 보입니다. 탄생 이전이나 죽음 이후에 다른 삶이 있었거나 있을거라고 하더라도 이생의 기억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라고 물으며 존재는 기억으로 명명된다는 철학적 명제를 떠오르게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데비언트가 이터널스들을 죽이고 그들의 기억을 흡수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기억을 보유했다고 해서 그 존재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이겠죠. 

4. 각자의 삶
마지막 임무 이후 에이잭은 모두를 흩어버립니다. 마치 예수의 부활 이후 각지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나, 디아스포라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흩어진 각자는 각자의 가치관을 따라 삶을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누군가는 속세와는 단절된 모습으로, 누군가는 집단의 교주로, 누군가는 기술을 추구하는 과학자로 이렇듯 각자가 생각하는 세상을 번영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삶을 살아냅니다. 이는 절대자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 소위 신앙인들이 각자의 삶에서 어떤 것을 통해 삶을 살아낼지를 선택하고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차후에 유니마인드로 하나가 됩니다. 마치 서로 다른 모습, 다른 삶을 살지만 성령으로 하나가 되는 크리스챤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5. 생육하고 번성하라
성경을 관통하는 인간의 목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입니다. 창조주는 처음 인간을 만들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 성경의 이야기를 끌고갑니다. 이터널스는 창조주의 이러한 목표를 '사실은 그게 너네를 위한게 아니라 창조주를 위한거임'이라고 말합니다. 셀레스티얼은 인간의 번성을 이용합니다. 인간의 번성과 생명 에너지의 충만함이죠. 셀레스티얼의 목적은 이러한 생명에너지를 통해 또 다른 셀레스티얼을 탄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지구는 종말을 겪게 되고 지구의 생명체는 모두 셀레스티얼에게 흡수됩니다. 성경에서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모두가 멸망하게 됩니다. 이 가운데서 또 다시 영생을 누리는 것은 셀레스티얼이 보낸 이터널스인데요, 이들 또한 기억이 삭제된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영화는 되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마치 신앙인들이 속고 있는 듯이 그려내었기에 다소 불쾌했지만, 셀레스티얼이 단지 창조주의 또 다른 피조물일뿐이고(마블 세계관에서 창조주는 셀레스티얼이 아닌 원오브올입니다. 셀레스티얼은 굳이 이야기하면 태초의 '빛'과 같은 존재에 더 맞아 떨어집니다.) 진정한 창조주의 의도는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성경의 가르침과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영화에서는 마치 셀레스티얼이 무작정 지구의 생명들을 희생해 셀레스티얼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 원작에서는 셀레스티얼이 '심판'의 과정을 거쳐서 불합리한(사랑이라는 우주적 질서에 맞지 않는) 존재들을 멸망시킨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능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6. 종말
데비언트들이 동물의 모습을 띄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입니다. 종말을 이야기하는 요한계시록을 보면 날개달린 짐승, 뱀과 같은 짐승, 사자와 같은 짐승의 모습들이 나옵니다. 이를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종말의 때에 마치 거대한 별이 바다에 던져진다고 이야기하는데, 셀레스티얼이 이 바다로부터(오래전에 던져져서 마침내 바다를 뚫고 올라오는) 등장하는 모습은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성취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화산이 폭발하고 곳곳에서 지진이 나는 일이 바로 이러한 '셀레스티얼이 등장하는 모습이 아닐까'라고 상상해본 듯합니다.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지키다

다시 심판

기도
듣는일

이터널스들의 존재

셀레스티얼의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