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향으로 달려가던 사람이 곧바로 몸을 틀어 반대방향으로 달려가는 데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이 옳지 않았다는 판단이 있어야하고 과거의 내가 애썼던 모든 노력을 무위로 돌릴만큼의 확신이 있어야한다. 힘차게 달려온만큼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원점이 나타나고 그 후에야 원하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테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터닝포인트라는 판단이 들더라도 사용한 시간, 노력 그리고 애썼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어 달리던 길을 계속 달려가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많을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핸들을 돌리는 일은 어려운데, 그만큼이나 오래고 먼 길을 이미 달려왔기에 남은 시간 동안 지금까지의 노력들을 상쇄할 수 있으리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 때부터 그 사람은 죽어가기 시작한다는데 있다. 아닌 길을 붙들고 있어봐야 소멸하는 자아를 발견할 뿐, 더 이상의 발전도 없고 희망도 꺾인다. 그렇게 희망이 꺾인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아브람의 집안은 잘 살아왔다. 우르라는 세계 제일의 도시에서 아브람의 집안은 꽤나 먹어주는 집안이었다. 아버지 데라는 우르라는 도시의 브랜드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였다. 우르 사람들이 따르는 가치, 머릿 속에 맴돌지만 모두가 동의하고 공유하는 그 가치를 물리계에 나타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많은 디자이너들이 데라의 우상을 카피하려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어딘가 비율이 틀어진 그들의 우상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데라의 명성은 높아져만 갔다.
데라의 아들인 아브람은 어느날 꿈을 꾼다. 그리고 번뜩이는 영감을 얻게 된다. 우르에서의 약속된 삶이 행복하기는 하지만 그에게, 늘 '더 높이'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는 이 도시의 정신은 문제가 있어보였다. 다른 어느 곳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수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화려함이 부유하는 곳이지만, 발전과 진보라는 기치 아래 비인격적이고 몰인간적인 일들이 당연시 되는 이곳은 마뜩치 않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에게 우상을 만드는 일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 일이 즐겁느냐는 아브람의 질문에 데라는 "즐겁단다 아들아. 내가 표현해낸 우르의 정신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많은 사람들이 그 우상을 소유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내 일이 무척이나 가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드는구나"라고 말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브람은 어렵게 입술을 뗐다. "그런데, 아버지 저는 우상이 너무 비싸다 생각해요. 우상을 살 돈을 구하려고 학교에서 친구들 돈을 갈취하는 사건도 있었고, 얼마 전에는 우상을 훔치다가 들킨 아이의 손목을 잘라버린 일도 있었구요. 이런 일들이 생기면 마음 아프지 않으세요?" 데라는 답했다. "마음이 아프기야하지만, 그런 욕망이야말로 이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반증이지 않겠느냐? 무릇 귀한 것은 얻기 어려운 법이지. 그 일을 바로 내가 하고 있다는게 얼마나 가슴뛰는 일인지 모른단다. 너도 나에게 잘만 배운다면 나보다 더 뛰어난 솜씨를 갖게 될거야. 우르의 새로운 스타가 되는거지. 대화가 더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브람은 이내 입을 닫았다. 아버지의 말이 맞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멋진 집도, 훌륭한 가축들도 모두 없었을테니까. 이 일을 잘 따라 배우기만한다면 먹고 사는 일이야 당연히 문제 없고 이 도시에서 엄청난 성취를 거두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날 밤, 아브람은 꿈에서 희미하지만 확실한 목소리를 듣는다. "우르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라." 아브람은 묻는다. "그렇지만, 여기에 모든게 있는걸요, 친척들, 가문의 땅, 지인들까지. 새로운 곳보다는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다. 모두 떠나야한다." 그 말을 끝으로 아브람은 잠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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