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성경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사도행전 2장 1-4절

에멀전 2020. 2. 12. 10:07

Acts 2:1 Καὶ ἐν τῷ συμπληροῦσθαι τὴν ἡμέραν τῆς πεντηκοστῆς ἦσαν πάντες ὁμοῦ ἐπὶ τὸ αὐτό. 2 καὶ ἐγένετο ἄφνω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ἦχος ὥσπερ φερομένης πνοῆς βιαίας καὶ ἐπλήρωσεν ὅλον τὸν οἶκον οὗ ἦσαν καθήμενοι 3 καὶ ὤφθησαν αὐτοῖς διαμεριζόμεναι γλῶσσαι ὡσεὶ πυρὸς καὶ ἐκάθισεν ἐφ᾿ ἕνα ἕκαστον αὐτῶν, 4 καὶ ἐπλήσθησαν πάντες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καὶ ἤρξαντο λαλεῖν ἑτέραις γλώσσαις καθὼς τὸ πνεῦμα ἐδίδου ἀποφθέγγεσθαι αὐτοῖς.

  1. 성경을 채우다
  제자들은 모여 있었다. 유월절이 다가왔기 때문인데, 아마도 누가복음 24장 52-53절, 사도행전 1장 13-14절에 적혀진 것처럼 모여서 말씀을 보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장과 2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탓에 맛디아를 뽑은 일과의 연속성을 간혹 간과하는데, 누가는 2장 1절을 Καὶ로 시작하며 맛디아 사건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시간적인 연속성이 굳이 아니더라도 내용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맛디아를 선출하기 전 베드로는 120명의 성도들 앞에서 "성경이 이루어져야할 것"을 이야기한다. 이때 쓰인 동사 πληροω다. 채워짐이라는 뜻을 가진 동사이며 뒤이어 성령으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로 쓰여지기도한다. 베드로는 시편에 적힌 다윗의 말이(시편 69:25, 109:8)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편 69편은 의로운 공동체를 핍박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 고발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적'이라는 개념을 예수님을 거부했던 유대인들에게 적용한다. 가룟유다 역시 예수의 모임에 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적'들과 함께 했으므로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또한 109편은 마찬가지로 '적'에 대해 서술하면서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시 109:8)라고 저주한다. 베드로는 이를 가룟유다에게 그대로 적용하는데, 이미 목을 메단 그에게 남은 그의 직분을 새로운 사람에게 주기로 한다.

  성경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승천하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1)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2) 예수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것, 그리고 제자들은 모여서 3) 기도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 가운데에 한가지 더 필요한 것은 성경을 이루는 것이다. 삶 가운데 성경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름 받았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우리가 해내야한다. 그분의 정의와 공의는 우리를 통해, 사랑도 우리를 통해 세상 가운데 전해져야하며 이것이 성경을 이루는 일이다. 

2. 성령으로 채워지다
  성경을 이루는 사람들은 곧 성령으로 채워진다. 맛디아 사건 뒤이어 나타나는 성령의 임재는 결코 성경을 이루는 것, 그러니까 적용하는 것과 다르다 할 수 없다. 오히려 성경을 이루는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모여 있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는 성령의 임재가 하늘로부터 임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깨닫게 한다. 예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신 또다른 보혜사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그 후에는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고한다. 이 부분에서 헬라어 번역이 나뉘는데, 하나는 혀처럼 생긴 불, 또 다른 하나는 불처럼 생긴 혀라고 이해할 수 있다. 원어는 γλῶσσαι ὡσεὶ πυρὸς "혀들"이 주어이고 "불"이 수식어이므로 불과 같은 혀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된다. 적용한다면, 우리는 성령의 불을 이야기하지만 제대로 번역한다면 성령의 혀라고 말해야한다는 것이다. (... 좀 괴상하긴하겠지)

3. 불과 같은 혀
  성령임재의 상징과 같은 불이 사실은 불이 아니라 혓바닥이라니, 괴상하다. 그러나 뒤이어 나타나는 현상들, 성령으로 채워진 사람들의 증상을 보게 되면 이해할만하다. 사실 이 혀라는 단어 γλῶσσαι는 "언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뒤이어 나타나는 방언이 바로 이것인데, 보면 사람들이 성령으로 채워진 뒤에 ἑτέραις γλώσσαις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다른 언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성령이 채워진 뒤에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령의 임재는 "언어"로써 등장한다. 어떤 개인적인 뜨거움과 감정적인 휘몰아침이 아닌 마음 속에 채워진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말하게 되는 것, 전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상호간의 소통을 의미한다. 그러니 성령의 임재는 곧, 소통의 강화를 말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말할 거리를 주는 것을 의미하기도한다. 

  이는 예수께도 나타난 현상이기도하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 12:49)"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또 발람은 발락에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민 22:38)"라고 말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말할 것을 주실 것이라 한다.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마 10:19)" 성령의 임재는 우리에게 말할 것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기도하며, 나아가서는 말할 것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한다. 다시말해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전에 누가복음 6장을 주해를 했던 것처럼, 사람은 채워진 것을 말한다. 술로 채워진 사람은 술의 것을 말하게 되어 있고 성령으로 채워진 사람은 세상의 진리를 말하게 되어 있다. 술은 헛소리로 치부되는 반면 세상의 진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하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이루며 성령으로 채워져야하고, 이는 우리로 말하게 할 것이다. 

아, 언어적인 표현만 말인 것은 아니다. 행동은 언제나 더 크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