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약할 때, 강함이라(명작 속에 숨겨진 멘델스존의 눈물), 이수영

에멀전 2020. 2. 17. 12:14

혐오의 세기다. 남과 여가, 노인과 청년이, 부유층과 빈곤층이 서로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각자의 울타리와 정체성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신과 다른 것을 배척해내는 것은 어쩌면 살과 피로된 인간의 한계일지도 모르나, 이를 넘어서는 일 또한 인간의 능력이지 않을까? 

이런 혐오는 과거라고 하여 덜하진 않았던 것 같다. 책은 멘델스존의 생애와 사상 전반을 다루며 특별히 그러한 멘델스존이 속했던 독일사회가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멘델스존은 개종한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이미 아버지의 개종으로 인해 할례를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7살 때 개신교 세례를 받는다. 유복한 편이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아버지 덕택에 슐라이어마허와 같은 당대의 지식이들과 교제하며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꽤 천재적인 재능에 새벽 5시부터 일어나 공부를 하는 노력이 합쳐진 덕에 20살의 나이에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완벽하게 되살려내며 평단의 화려한 호평을 받는 작곡가가 된다. 또 그의 오라토리오 바울은 최고의 극찬을 받으며 멘델스존의 해라 할만한 2년을 만들어 냈다. 

이렇듯 국제적인 명성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멘델스존은 두 가지 면에서 차별을 받게 된다. 첫째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인데, 그가 어렸을 때 부터 기독교인이었음에도 유대인이라는 혈통적 뿌리는 그를 베를린으로부터 추방케한다. 베를린의 인종적 편협함, "유대인은 징아카데미의 단장에 오를 수 없다"라는 생각은 멘델스존에게 큰 상처가 되었고 세계를 떠돌게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로 미루어보건데,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히틀러라는 개인에 의해서만 자행되었던 건 아니었으리라.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히틀러를 빚어냈고, 유대인 학살이라는 죄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선악과 이후로 이어져오는 인간의 생존본능이라는 것과 스스로가 신이 되고자 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이 혐오와 학살을 낳았으니, 아렌트가 논한 악의 평범성에 한뼘 더 더 공감 간다. 혐오란 누군가 특정한 사람들만이 소유한 악당 같은게 아니다. 자기를 뛰어넘지 못하는 모두가 혐오의 숙주이며 잠재적 히틀러일지 모른다. 

멘델스존의 이야기가 깊이 울리는 이유는 그가 이 혐오의 문제의 해답을 성경으로부터 찾으려 했다는데 있다. 그가 구성한 독특한 바울 해석은 역시나 그가 극복하고자 했던 현실에 놓여 있었다. 스스로를 유대로부터 괴리된 바울과 같은 자리에 두어 당시 독일 사회에 던져 내었던 반향은 오늘날도 유효하지 않을까? 왜곡된 진리 해석, 그리고 거짓 신화들은 혐오를 낳고 오직 십자가만이 사랑을 낳을 수 있음은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피흘림 없는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